피아노협주곡1번 이곡은
모스크바음악원 교수가 된지 9년째 되던해인 1874년에 쓰여졌는데 음악원의 원장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에게 항상 경의를 표하고 있었던 바, 피아노협주곡의 첫 야심작인 제1번을 니콜라이에게 헌정하고, 그가 초연을 맡아주길 바랬으나, 악보를 검토한 루빈슈타인은 협주곡의 상식에 벗어난
졸작이라고 혹평하고는 상당부분을 개작하면 초연을 맡아주겠다는 것이었다. 격분한 차이코프스키가 이 제의를 거절하고 독일 지휘자겸 피아니스트인 한스 폰 뵐로에게 부탁하였던 바 그로부터 독창적이고 경탄할 만한 곡이라는 정반대의 평을 받았다. 미국으로 초청받아 건너간 폰 뵐로는 보스턴
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대성공을 거두었고, 그것은 러시아 작품이 국내에서 초연되던 관례를 깨뜨린 최초의 작품이 되었다. 3년후에 루빈스타인이 차이코프스키에게 사죄하였던 바 처음에 그를 매도한 것은 그 대곡을 작곡하면서 선배이자 대가인 자기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은 것이 괘씸했기
때문이라고 한다. 그러나 차이코프스키도 니콜라이가 죽은후에는 일부 수정을 하였었고, 그후 피아노협주곡 2번,3번도 작곡되었으나 그곡들은 거의 사람들에게 잊혀져있는 실정이다.